평등부부상 평등한 결혼 준비

평등한 결혼 준비


김 인 숙

우리 나라에서는 성인이 된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는데도 결혼 당사자의 의사보다도 부모의 의사가 더 중시된다. 그런데 부모는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보수적 성향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부모가 주도하는 결혼과정은 전통적인 남녀불평등을 자연스럽게 후세대로 이어주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우리의 전통사회에서는 남녀불평등이 당연시되었기 때문에 가족구조뿐만 아니라 결혼과정에서도 남녀는 평등하지 않았다. 그래서 딸을 시집보내면 대들보가 휘청거린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유행한 것이다.
남편과 나는 6개월 정도 동거를 하다가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그래서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커플들과는 달리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결혼을 준비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그 점이 우리 부부가 남녀의 차별 없이 결혼준비를 할 수 있었던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둘 다 직장생활을 오래 한 것이 아니라서 사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금전적으로 힘들었다. 그렇지만 둘 다 자립심이 강한 편이라서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형식을 좇는 과정은 생략하고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것 위주로 준비하게 되었다.
우선 결혼준비는 예식장을 잡는 일부터 시작했다. 예식장의 예약비용은 같이 부담하고, 나머지 비용은 사정상 결혼식 축의금에서 충당하기로 했다. 예식장 사용료는 양가에서 반반씩 부담하고, 음식값은 양가의 손님 수에 비례해서 나눠 내기로 했다.
예식장 예약을 마친 다음에는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고 난 뒤에 살 집을 구하러 다녔다. 나는 그때 이미 임신 5개월이라서 직장을 휴직하고 있었고, 남편은 휴가를 내어 같이 집을 보러 다녔다. 집 값은 내가 살던 집의 전세금과 주택자금대출로 해결했다. 사실 집 값에서 대출금을 뺀 돈은 내가 마련한 것이니 집을 얻는 과정은 평등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지만 남편이 졸업하고 취직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그 점은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예물과 예단은 서로 현품으로 교환하지 않고 같은 액수의 돈으로 직접 교환했다. 예물 구입할 돈을 양가 부모로부터 받아서 둘이 잘 아는 금은방에서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했고, 예단은 같은 액수의 돈을 양가가 교환해서 직접 준비하셨다.
마지막으로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결혼식에서 폐백 드릴 때 받은 돈으로 마련했다. 고가의 제품보다는 우리 두 식구가 사는데 알맞은 크기와 집의 평수를 고려해서 실속있게 구입했다. 가전제품과 가구들은 우선 꼭 필요한 것만 사고, 살아가면서 여유가 생기면 하나씩 구입하기로 했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우리는 결혼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양가 부모에게 거의 의존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평등한 결혼준비가 가능했다고 본다.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의 남녀차별은 마치 여자가 돈에 팔려 결혼한다는 느낌을 줌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결혼생활의 출발점에서부터 불리하게 만든다. 사회적으로 완전 독립된 성인 남녀가 만나 부모의 간섭과 도움으로부터 벗어나서 결혼준비를 하는 것은 평등한 결혼생활의 출발점인 것이다.